훈계 문화에 대한 성찰: 진정한 지식 공유의 의미

끊임없는 훈계와 소통의 부재

요즘 온라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훈계하는 업데이트가 참 많아졌다. 예전에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훈계성 글이 난무할 때, 나는 “STL이나 GitHub 같은 곳에 직접 기여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말 없는 개발자들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 작은 물결이 지금의 환경을 만들어낸 것 같다.

링크드인에서도 자신의 연구나 경험을 공유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나 조언을 끊임없이 전파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수백, 수천억대 자산가들이 훈계 글을 올리길래, 내가 삼성 상생펀드 1조 운영자임을 언급하며 ‘졸부’라고 비꼰 적이 있다. 이후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푼돈 주면서 훈계질하지 말라”고 한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글이 내 피드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진정한 만남의 가치

개발자 모임을 준비하면서 미국에 계신 김 박사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너무 참여하고 싶지만 미국 일정 때문에 못 온다며, 산만하고 자유로운 개발자 모임으로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15분간 해주셨다. 내 글도 잘 보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 모임은 ‘산만한 개발자 모임’으로 진행할 예정인데, 첫 모임에 1조 8천억 IT 예산을 운용하시는 분이 참석하신다고 한다. 경남 진주에 사는 학교 후배도 멀리서 온다고 하고, 지난주에 오셨던 경남 산청의 개발자도 다시 참석할 예정이다.

그런데 돈의 액수를 언급하거나 먼 거리를 감수하고 참석하는 것 자체가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모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런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전문성과 진정성의 가치

솔직히 말해, 인터넷에서 타인을 훈계하는 영상이나 글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심리학자라면 미국 심리학회의 연구 결과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보여주고, 과학자라면 네이처와 같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맞다. 개발자는 STL에 기여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들의 전문 영역에 맞게 기여하면 된다.

무언가를 알려주려면, 마치 너드처럼 자신이 즐겁게 연구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전파하는 느낌이 나는 것이 좋다. 진정한 전문가의 열정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경보다 중요한 것

‘카이스트’와 같은 학교 이름은 그저 수식어에 불과하다. 피카소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이순신 장군의 자녀가 몇 명이고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그 사람 자체와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이미 챗봇의 시대가 도래했다. 일반적인 훈계나 정보는 챗봇을 통해 근거와 함께 얻을 수 있다. 개인들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생각을 공유하면 되고, 그것이 챗봇의 훈련 데이터가 된다. 만약 훈련 데이터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집에 있는 일기장에 글을 쓰면 된다.

지식 공유와 소유권의 역설

내 지식이 다 빼앗기는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에 정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밤새워 얻은 지식도 결국 사업가나 경영자의 자산이 되고,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며 성장한 이들도 결국 정치적 희생양이 된다. 진정한 명예란 없으며, 오히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역사에 남는다.

개발자의 정체성과 진정성

개발자도 연구자다. 최근 챗봇이 등장하면서 다른 일을 오래 하다가 갑자기 자신을 개발자라고 소개하는 지인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 그들의 분야에서 개발자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사람들도 그들을 개발자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를 평생 하지 않던 사람이 어디서 레시피를 구했다고 갑자기 요리사를 자처하면, 처음에는 만든 요리가 비슷해 보여 신기해 하다가 결국 사람들은 떠난다. 제품을 오래 만들어 신뢰가 쌓여야 그에 맞는 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연구 결과가 있어야 새로운 연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도전과 끈기, 그리고 즐거움

그렇다고 이들의 도전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다시 ‘끈기’로 귀결되고, ‘끈기’는 다시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하는 일이 재미없으면 결국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진정한 전문가(‘찐’)의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조차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FSF 초창기 멤버들처럼,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고 몇 시간이고 대화를 즐기며, 필터링 없는 자유로운 사고를 공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필터를 통해 자신의 발언을 제한한다:

  • “이것을 모른다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
  • “이 정보를 공유하면, 남들이 금방 따라하지 않을까?”
  • “이것을 말하면 내가 다른 곳에서 베낀 것이 들킬지도…”

이런 태도는 결국 자리 선점(포지셔닝)의 문제로 귀결되고, 이는 팀의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넓게 보면 이는 사회적 문제이고, 극단적인 경우 전세 사기꾼이나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상사들과 같은 부류라 할 수 있다.

비밀 유지와 신뢰의 가치

어제도 20년 차이 나는 제자가 연락해서 한 시간 동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의사, 심리학자, 변호사와 같은 직업의 특권은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이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런 비밀 때문에 그들이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래서 내 글이 특별히 무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저 현재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진정한 영향력의 역설

링크드인의 콘텐츠도 점차 자정 작용을 거치고 있지만, 그 특성상 기업 대표나 인사 권한자의 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에 비판에 있어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쿠팡과 여러 대기업 인사과에 근무했는데, 권한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길 꺼렸다. 한 다리만 건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권한이 많을수록 공개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판사가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직업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납득이 간다. 한 마디로 타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우람 판사님의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추천한다. 나와 아내가 함께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삶의 목적과 즐거움

나 역시 ‘재미’만 추구하는 인생을 언젠가는 졸업해야 할 것 같다. 의학박사님도 그렇고, 먼 길을 오는 친구들도 그렇고, 결국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즐거움’이 정말 삶의 궁극적 목표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링크드인에서 자기 PR을 위해 “남 훈계”를 선택한 사람들은 과연 그것이 즐거운지 묻고 싶다. 그랬다면 앞으로는 그 즐거움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갑진 교수님처럼 자신의 이야기와 연구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물었을 때 가르쳐주는 방식이 좋지 않을까?

불필요한 훈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훈계하는 사람을 훈계하는 나 자신도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하루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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