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비대칭성과 기술 권력은 오늘날 사회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겉으로는 효율과 편의성이 강조되지만, 그 이면에는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통제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 일반 사용자는 점점 더 정교하게 설계된 틀 속에 갇히고, 선택지조차 통제당한 채 시스템 안에서 소비되고 조종된다.
1. 개발자에서 시스템 관리자로 이동한 권력
한때, 기술 권력은 개발자에게 있었다. 그들이 쓰는 코드 한 줄이 웹을 변화시켰고,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권력은 점차 시스템 관리자, 더 정확히 말하면 플랫폼 설계자에게 넘어갔다. 이제 권력은 누가 코드를 짜는가가 아니라 누가 시스템의 규칙을 설정하는가에 있다.
이런 변화는 비단 IT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금융, 언론까지 모든 영역이 시스템화되면서 그 안에 숨겨진 프로토콜과 우선순위, 노출 알고리즘, 정책들이 곧 ‘현실’이 되어버렸다. 일반인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미 정해진 질서 안에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몰린다.
2. 거래 시스템과 인간 욕망의 본질
현대 금융의 대표적 구조 중 하나인 선물 거래 시스템은 인간 욕망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드러낸다. 롱포지션(상승에 베팅)과 숏포지션(하락에 베팅)이 혼재된 상태에서 거래는 성립한다. 그러나 이 시장은 제로섬이다. 누군가의 수익은 누군가의 손실을 전제로 한다.
이 구조를 기술 권력의 시각에서 보면 명확해진다. 자금력과 정보 접근성이 뛰어난 세력은 시장에 인위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격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급락시켜 특정 포지션을 청산시키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한다. 이는 전혀 불법이 아니며, 구조적으로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소수의 설계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3. 너무나도 쉬운 시스템 조작
기술적으로는 훨씬 더 단순한 영역에서도 조작은 가능하다. 예컨대, 도박 시스템을 개발할 때 사용자의 시점에 따라 상대방 패만 보이게 하는 플래그를 설정하는 것은 몇 줄의 코드로 해결되는 일이다. 이 논리를 주식, 코인, NFT 거래 시스템에 적용하면 선택적 정보 노출, 시세 조작, 허위 거래 체결까지도 가능해진다.
이처럼 시스템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한, 어떤 윤리나 법적 기준도 시스템 외부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기술 권력은 법보다 먼저 움직이고, 더 은밀하게 작동한다.
4. 사기와 시스템이 만났을 때
한때 금융 혁신이라 칭송받던 P2P 대출 시스템은 실제로는 사기와 부도, 먹튀로 얼룩진 현실을 남겼다. 면접 한 번에 수억 원 시계와 명품으로 치장한 임원이 회식하자며 권하는 시스템 속에서, 정상적 기업과 사기꾼의 경계는 흐려진다. 구조 자체가 문제인데도, 외형만 보면 ‘성공’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혹은 수면 아래 있는 구조를 보지 못한 채 사용자는 표면만 소비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언제든지 사용자를 낚아채는 함정이 된다.
5. 플랫폼 권력의 감춰진 실체
오늘날 플랫폼은 정보 유통의 중심이다. 하지만 그 플랫폼들은 자사 이익에 반하는 콘텐츠를 제한하거나 노출을 조절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알고리즘은 중립을 가장하면서도 정치적, 상업적 판단에 의해 정보의 확산을 결정짓는다.
정보 접근의 자유는 실제로는 플랫폼의 장벽 뒤에 숨겨져 있다. 링크 하나를 누르는 데 1초도 안 걸리지만, 그 링크가 누군가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정책, 이익, 검열이라는 수많은 필터를 거친 결과다. 그런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사람들, 즉 시스템 관리자만이 그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6.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고백
이런 시스템 안에서 기술자로 살아가는 것에는 지속적인 회의감이 따른다. 내 기술이 시스템을 조작하고 누군가를 속이는 데 쓰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단지 ‘일’이었을까? 개발자 혹은 설계자 본인의 윤리는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을까?
결국 선택의 기준은 하나다.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사는가.”
투명성은 이상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며,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는, 이미 정의가 사라진 사회다.
7. 공개와 투명성의 힘
오픈소스 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정보의 공개는 새로운 힘의 근원이 된다. 단, 그 정보가 단순한 열람용이 아니라, 비판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로 제공될 때 그렇다. 그 과정이 있어야 기술은 민주화되고, 시스템은 균형을 맞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 관리자들은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과 “드러내야 할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기술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만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이 글은 단지 어떤 특정 기업이나 사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일반인’으로 시스템에 속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시스템은 설계된 대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만든 이들의 윤리가 곧 사회의 구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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