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peedpointer

  • 물질적 결핍과 수집의 심리: 운동화 컬렉션을 통해 본 자아성찰

    현대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고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패션 아이템 중에서도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자 수집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개인적인 운동화 수집 경험을 통해 물질적 소유와 결핍의 심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핍에서 비롯된 수집욕

    수집벽(收集癖)은 흔히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나 역시 어릴 적 비록 간간이 좋은 운동화를 기부 형태로 받긴 했지만, 직접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고 구매할 여력이 없었다. 그 시절의 결핍감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필요 이상의 운동화를 구매하게 되었다.

    결국 300켤레가 넘는 운동화를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넓은 방이라고 자부했던 내 공간은 운동화 박스로 가득 찼고, 급기야 회사 사무실까지 침범했다. 심지어 월세를 내며 운동화만을 위한 별도의 보관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강박적 수집의 형태로 발전했던 것이다.

    미디어와 과시 문화의 영향

    대중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이 자신의 운동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 미개봉 상태로 보관 중인 100켤레를 포함한 운동화 컬렉션을 과시했던 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만족을 넘어 사회적 인정과 과시 욕구의 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증 문화’가 확산되면서, 물질적 소유를 통한 자기 표현과 정체성 구축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깨달음의 순간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첫째,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 운동화라도 10년이 지나면 접착제가 분리되고 쿠션은 삭는 등 결국 물리적 수명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운동화 업계 관계자의 말을 통해 이를 확인했을 때, 내가 모았던 것은 결국 ‘미래의 쓰레기’였다는 인식이 찾아왔다.

    둘째, 실제로 한 켤레의 운동화를 1개월 이상 신은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컬렉션은 전시용으로만 존재했고, 많은 것들은 포장조차 뜯지 않은 채 보관되었다. 이는 신발의 본질적 기능인 ‘신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소유 방식이었다.

    변화의 시작: 기부와 나눔

    이러한 깨달음은 변화로 이어졌다. 운동화 100켤레를 기부하게 되었는데, 이는 어린 시절 사회단체를 통해 받았던 도움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컸다. 또한 해외에서도 옷은 많이 기부되지만 운동화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정보를 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조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할 수 있었고, 지인들에게도 많은 운동화를 나눠주었다. 이 과정에서 물건을 통한 인간관계의 형성과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물질과 소유에 대한 새로운 관점

    현재는 어떤 운동화를 보아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게 줄었다. 이는 단순히 많은 양을 소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질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운동화의 물리적 한계(접착제의 분리, 쿠션의 노후화 등)를 인식하고, 이것이 영구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가장 선호하는 뉴발란스 990 시리즈의 경우에도 매년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지금 구매하지 못하면 다음에 더 개선된 버전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욕구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실용성의 재발견

    아이들의 운동화를 고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아 신발이 빨리 더러워지고, 또 성장으로 인해 사이즈가 자주 바뀐다. 이를 통해 운동화의 본질적 가치는 ‘전시’가 아닌 ‘사용’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실용성을 위해 선택하는 크록스나 바크 같은 신발, 또는 극한의 환경에서 기능성을 발휘하는 등산화의 가치는 브랜드나 디자인보다 그 실제적 효용에 있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지혜였다.

    결론: 소유를 넘어선 가치의 발견

    물질적 결핍에서 시작된 수집은 과도한 소유를 거쳐 결국 비물질적 가치의 재발견으로 이어졌다. 개인적 운동화 컬렉션의 역사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물질과 자아 정체성 간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현재는 여전히 70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 의미와 가치는 크게 달라졌다. 소유 자체보다는 실용성과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앞으로는 국산 브랜드인 프로스펙스와 같은 실용적 선택을 더 중시할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이미 물질적 소유에 대해 더 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결국 신발은 브랜드나 가격이 아닌, 개인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는 전시가 아닌 실제 사용에 있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