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전 글에서 인공지능의 끝은 결국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 2탄이라고 보면 되겠다.
인공 지능이 한글을 이해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초적 사이트가 있다.

말 그대로 제목의 결과가 나온다.
인공지능은 단어를 수학적으로 숫자로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단어를 각각 위치(벡터)로 나타내어, 단어 간의 관계를 숫자로 계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서울 사이의 관계는 일본과 도쿄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벡터 계산으로 알아낼 수 있다. 마치 지도를 펼쳐놓고 점과 점을 잇는 것처럼, 단어들도 위치를 가지고 연결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한국 – 서울 + 도쿄 = 일본
할아버지-남자+여자 = 할머니
프랑스 – 파리 + 런던 = 영국
겨울 – 추움 + 더움 = 여름
이런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은 단어 간의 의미 관계를 학습하고 이해한다. 결국, 인공지능의 끝은 사람이기에, 인간이 생각하는 관계와 가까운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빠-남자+여자=엄마 가 슬픔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근래에 계속 유행하는 MBTI는 내가 2008년에 삼성에 들어갈 때 시행했었던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삼성의 기술이던 문화는 한국 내에서 10년은 빠른 것 같다. MBTI에서 T와 F의 차이는 감정을 이해하는 시각의 차이이지 T는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즉, 인공지능은 답변은 T랑은 관계없이 감정을 이해할 감성이 없다. 로봇이랑 연결해서 슬플 때 상황은 눈썹을 찌푸리거나 얼굴을 감싸거나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은 벡터처럼 최대한 인간을 이해하는 척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가깝게 해야 할지 학습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혹자는 이런 것도 결국 인간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학습시키면 어떤 순간에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죽이는 것도 프로그래밍해서 인간의 감정을 깊게 이해했다고 광고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순히 외부적으로 보이는 패턴에 대한 통계적 추론일 뿐이다. 내적 경험이나 감정적 고통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다른 차원인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 신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거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한다거나의 이유보다. 특별함은 이중성과 모순에서 온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너무도 불쌍하지만 소고기는 너무나 맛있다. 양자 중첩과 같이 한 상황에서 동시에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 그렇다. 이런 이중성과 모순은 인공지능의 논리적 계산으로는 완벽히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모니터 주사선이 화소수만큼 있는 것이 아니고 빨강, 파랑, 녹색 삼원색의 조합으로 구현하기 때문에 그 한계로 우리 눈에서 직접 풍경을 보는 느낌과 모니터로 풍경을 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양자 컴퓨터가 아닌 논리적 회로로 출발한 제약 때문에 인간을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감정이 단순히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으로 내 삶을 풀어 보려는 시도는 결국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양자컴퓨터에서 돌아가는 LLM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트랜스포머 모델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딥러닝으로 세상 대부분의 문제를 풀고 있듯이 딥러닝의 끝에서 다시 나올 새로운 이론으로, 그 관점으로 또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컴퓨터가 나올 것이다.
언제나 올까?라고 나에게 질문하면. 몸속의 세포가 30조 개 있고 매일 3300억 개의 세포가 죽고 살아나니 거기다가 세포의 원자수를 곱해서 나오는 큐비트가 가능한 시기에 인간 자체를 완벽히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의 시카모어가 54 큐비트에서 1개는 오작동이라고 하고 지금 100 큐비트 이상도 구현이 되었다고 하는데 결국 1000개, 아니 10000개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들어가는 자금과 이런 상황을 비밀리에 할리도 없다는 사회적 경험에 의해서이다. 아주 먼 미래도 내가 살아서는 못 보겠지만 내 다음 세대에서는 좋은 관점과 방향으로 꼭 인간 자체를 구현해 보라는 글로 남기고 싶다. 그보다 생물학이나 생명공학 등이 더 발전에서 아예 클론을 먼저 만들지도 모르지만.
구현이 끝나면 이 인공지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내 삶의 데이터를 모두 주고 내 삶은 과연 옳았는가? 물어보고 싶다.
대답은 사실 뻔할 것 같아서 그런 컴퓨터를 못 보고 가는 게 아쉽지는 않다.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
위에서 소개한 사이트가 기초적 사이트라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삼촌 – 남자 + 여자는 이모 가 안 나온다.
왕 – 남자 + 여자는 여왕 이 안 나온다.
교사 + 학생은 교육이 안 나온다.
스파게티 – 이탈리아 + 한국은 자장면이 안 나온다.
사랑 – 믿음 + 배신은 이별이 안 나온다.
형 – 남자 + 여자 누나는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