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려 합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옳은 사람과 그른 사람으로 나누려 하죠.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게 분류될 수 있는 것일까요?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범죄 전과자일 수도 있고, 존경받는 교수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강석진 교수의 사례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잘 보여줍니다. 뛰어난 수학적 능력과 범죄 행위는 한 사람 안에 공존했고, 이는 우리의 단순한 선악 구분법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밥을 짓는 비유를 생각해봅시다.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놓고 마지막에 음식 쓰레기를 부어버리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9번을 잘하고 1번을 실수하는 사람과, 9번을 실수하고 1번을 잘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은 사람일까요? 이런 질문들은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호한지를 보여줍니다.
신성일의 경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의 예술적 업적과 개인적 삶의 과오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교묘하게 감추고 사는 것보다 더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를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이 가장 큰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잡히지 않는 범죄자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회적 교훈으로 남기는 사람이 더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그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을 판단할 때 우리는 좀 더 복잡하고 깊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선악의 구분이 아닌,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