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찰과 인생의 무게에 관한 독백

오늘 하루 종일 일했다.

내가 한 일을 굳이 여기서 정리할 필요는 없다. 이미 모든 이해관계자들—협업하려는 사람, 투자자, 개발 파트너, 응원자들—에게 알렸으니 말이다. 이런 관계들은 추상적인 목적 아래 다양하게 존재하고, 때로는 하나로 묶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번 달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수익은 있었어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와이프와 함께하는 유일한 운동이 골프인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두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우리 부부는 오십견, 허리 디스크, 손가락 인대 파열 등 여러 건강 문제로 수개월간 등록해 둔 골프 레슨이 모두 무산되었다. 미루고 미뤘지만, 매달 하나씩 불운이 찾아온 느낌이다. 약 400만 원을 날렸고, 이는 계획 부족과 상황 대처 미숙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가 되겠다는 포부로 매달 500만 원 이상을 투자하며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결국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결과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동안 여러 면담 요청을 받았는데, 대부분 힘듦, 질병,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의 내용이었다. 그들의 어려움이 보여 좋은 말로 위로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같은 고민을 반복하길래 내 상황을 털어놓자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성격 유형에 따라 단순히 들어주길 원했거나(F), 문제 해결책이나 취업 기회를 바랐을(T) 수도 있다. 나는 모든 방안을 강구했지만, 이제는 이런 일에 더 이상 시간과 자원을 쏟지 않기로 결심했다.

전문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럴 수 없다면 자연의 섭리에 맡기기로 했다. 비록 그 결과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지라도 말이다.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는 나의 자원을 개인적 방어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다. 아무리 부유해지고 지혜롭게 살아도 인생은 결국 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분석을 통해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도, 점집을 찾아 미래를 점치는 사람도 이해가 간다. 다만 대중이 원하는 리더라면 논리와 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조금 지쳤다. 물론 오늘까지 일하고 내일은 포트나이트로 가상세계에서 놀면 다시 충전될 것이다.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고, 죽음이 크게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과정이 두렵지, 죽음 자체는 아니다.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내일 고통 없이 눈을 감게 된다 해도 큰 미련은 없다. 최선을 다해 살고, 소중한 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장한 후배 세대와 이 나라의 공권력이 내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불만이 있을 때도 많지만, 근대사를 돌아보면 6.25나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안전한 나라다. 겨울은 춥고 경제적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게 하지만, 인간의 온정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진심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가 한몫하고,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오히려 더 베푸는 경우가 많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며, 이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는 추세다. 내가 중시하는 요소는 거래량, 성장 모멘텀, 그리고 사기 여부다. 코인 시장에서 부정행위가 의심되면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철수한다. 언젠가는 이런 판단 기준을 공개할 날이 오겠지만,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하다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어려운 일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성공하면 공을 요구하거나, 거짓말로 이력을 꾸미는 경우를 봐왔다. 내부고발 후 그런 이들과 연락이 끊어졌지만, 적어도 성공 후 초기 동료를 버리는 사람보다는 나은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의 자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은 연좌제로 단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때는 자기방어 수단으로 총기 소유를 지지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면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기업 경영자들은 자신을 강자로, 직원을 약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번 복종하게 되면 자신의 제약을 자랑하며 저항을 상상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길들여진 동물이 사육상태를 당연시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발적으로 채식주의를 선택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성철 스님처럼 비건 생활방식을 택한 이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굴레도 주말이 되면 잠시 내려놓는다.

때로는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이런 태도가 박쥐나 양비론자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평가받을 위치가 아니기에 그럴 때는 소통 자체를 중단한다. 내가 어려울 때 곁에 있어준 사람들은 내가 먼저 도왔던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은 단순한 주고받음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지만, 내 분야는 보상이 확실한 세계라 많은 이들이 끌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휴식이 되지 못하는 삶이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골프 연습을 몇 달 못 간 것만으로도 수백만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다르게 보면 그 돈이 시설 유지와 직원들에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팩트다. 이제는 이런 생각조차 하기 싫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에만 옷 40벌, 신발 10켤레, 한정판 물건들을 나눔했다. 아직 많이 남았지만, 투자처럼 추세가 중요하다면 곧 내 주변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현재를 내려놓은 자만이 미래에 관대해질 수 있다.

미래의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려면 현재의 모습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다. 브런치 글을 볼 때마다 내 삶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아 이렇게 솔직한 기록을 남긴다. 이 글에 진실을 담아야 내 삶의 순수한 부분이 오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감사하다. 작은 실수로 인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평생 범죄자로 사는 이들의 기사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음주운전으로, 운전대만 잡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다. 삶이 힘들 때 이런 사례의 후속 기사를 찾아보면 내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도 더 어려운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이 있다면, 어떤 위치에서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좋아요가 없어도 누군가 읽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 역시 반응하지 않고 글을 읽었던 경험이 있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우리나라를 지켜온 이름 없는 의병들과 숨은 영웅들 덕분에 지금의 내 삶이 이어진다. 그래서 내부고발자의 삶을 선택했고, 그로 인한 후회는 오히려 다른 이들이 더 많이 한다.

내 삶에는 다양한 일들이 있지만,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겪는다. 인간관계의 단절도 그 중 하나다. 사람을 평가하는 교수들 중에도 학교 비리를 알면서도 내부고발하지 않고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말 많은 교수보다 묵묵히 본업에 충실한 이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나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연예인의 공개된 인간관계가 전부가 아님은 자명하다.

이제 생각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언제나 이것이 마지막 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약해지면 정신도 함께 약해진다. 주변에서는 내가 더 약해져야 한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내 장례식에 올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하늘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고, 앞으로 50년을 더 살아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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