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뭔가 만들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참여해서 만들어준다. 그 뒤 모두가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겹다.
마치 연애를 처음 하는 사람들의 설렘이 오래되고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데이트 과정 자체를 귀찮아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기대를 내려놓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안 될 때 꿈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실컷 이야기해도 그 꿈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다들 바쁘다.
한가한 건 나뿐인 것 같다. 깨어 있어도 자고 있어도 개발을 하는 내가 유일하게 한가해 보인다.
일상의 작은 변화들
요즘 빨래와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밥도 혼자 해 먹는데 계란을 참 좋아한다. 그런 계란도 질렸다. 프라이 먹다 질려서 스크램블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스를 매일 바꿔본다.
배달음식 시켜 먹다가 남은 케첩을 첨가해보고, 허니머스터드, 심지어 회 시켜 먹고 남은 초장도 써본다. 맛있다.
변화가 있으니 좋다. 간단한 원리다. 밥과 계란은 그대로지만 변화를 줄 건 줘야 한다.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사람은 참 다르다. 지인과 사업을 한다고 할 때 비즈니스적 관계와 개인적 관계를 나누어서 행동해도 다 영향이 간다.
개인의 친밀함을 비즈니스적으로 박하게 해도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연봉을 반을 깎는 건 기본이다. 어느 곳이나 그랬던 것 같다. 우리가 남이가.
남은 그렇게 안 한다. 깎는 경우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남이 가족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또, 처음엔 이해하지만 그런 비즈니스가 잘 되었을 때가 문제다.
이미 십 년도 전에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안 그러리라 하지만, 끊임없이 같은 생각들이 부딪친다.
태어난 지역도 성격도 살아온 환경도 학연, 지연, 혈연 등 백그라운드가 다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임원이 되어 생각하는 것은 다 비슷한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른 길을 걷기로 하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두렵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플랫폼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하지 않는다. 일단 물에 담가둔다. 손은 자주 씻으라고 하는 것 때문에, 또 키보드를 하루 종일 만지니까. 오다가다 생각나면 하나씩 설거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내 위생을 위한 손을 씻는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을 만든다기보다 그냥 내가 공부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경계를 긋다
내가 만들어서 다른 애들을 대기업에 넣어주는 것도 이제 안 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밤새면서 나를 도와준 것도 아닌데, 내가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나에겐 별 필요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입신양명에 쓰이는 프로젝트가 이제는 아깝다.
다들 학교나 동아리, 회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시간이 촉박하고 본인이 완성을 못하면, 굳이 내가 트러블 슈팅을 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실력이 부족한 것이고 어찌 보면 운명이다.
혈연이 뭘 하자고 해도 이제 안 하기로 했다. 의뢰가 들어오면 회사에 정식으로 의뢰하라고 한다. 문제 생기면 법적 소송도 하자며 프로페셔널하게 하자고 한다. 그게 맞다. 일은 일이다. 일과 개인적 관계, 삶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
인공지능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개발자는 하기 싫어한다.
나는 인공지능 세상에 동시통역이 되는 하드웨어가 나와도 동시통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시통역사를 쓰는 그룹은 어차피 돈이 있는 그룹이고, 동시통역사 없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동시통역사를 쓸 경제적 힘이 없다. 개발자도 마찬가지 이유다.
언젠가는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살아생전에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없애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제야 깨달았다. 개발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온라인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분포가 넓다. 한국은 산업이 다 죽었다. 그래서 다들 코딩한다고 난리고 나름의 열풍이었다. 포지셔닝 이후에 억지로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라 또 순식간에 다른 업으로 간다.
신뢰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진짜 신뢰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혹은 다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나에게 그렇지 않은 관계는 다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어제만 100명 가까운 카톡 프로필을 차단했다.
감탄고토일 수도 있지만, 나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 것을 좋아해주면 좋다. 가까운 사람보다 더 내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이미 오랜 기간 함께 해온 사람만큼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만남에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그것이 매우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 나이에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나도 이제 떠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남은 세월 더 노력하면 내 일과 내 삶이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 같다.
내 생각이 정리되어야 추진력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세상에 수많은 생각이 부딪치는데, 나 역시 참가하고 있다. 이래저래 생각 교류를 하다 보면, 그나마 얼리 스테이지에 있는 것 같다. 뭐, 그래봤자 결국 제품으로 승부해야 하는 세상이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누가 마우스를 처음 만들었고, 누가 처음으로 키보드를 만들었고, 누가 처음으로 모니터를 만들었는지 모르니까. 물론 예전에 찾아보긴 했지만 기억할 필요가 없는 정보로 분류해서 잊었다.
그렇다. 세상의 이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제품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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