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논의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하려면 참여자들이 공통된 기반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자료를 제시하자면, 실무와 학문 영역을 모두 아우르려는 이 분의 관점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LLM은 10명 내외의 팀이 개발하고, 이들 팀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보기에는 이 소수 팀이 만든 챗봇의 성능이 인문학 분야에서 교수의 독창적 통찰력을 제외한 지식 영역에서는 이미 90% 이상 앞서 있다. 모든 사람이 이를 인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며, 지금까지 공부하고 네트워킹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결과 대부분의 인문학 분야에 이것이 적용된다고 본다. 그 90%라는 수치도, 실시간 질의응답, 24시간 가용성, 체계적 정리 능력,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한 집중적 질문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다양한 AI 도구들은 대부분 무료이거나 월 5만 원 이하로 이용할 수 있다.
챗봇을 마치 복잡한 인공지능인 양 포장하고 물리적 AI를 혁신적 기술처럼 포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임베디드 시스템과 딥러닝 부트캠프 예제를 경험해본 개발자라면 AI 로봇이 나왔을 때 즉시 구현 방법이 떠올랐을 것이다. 암호화폐 시대가 저물면서 기관들이 남은 물량을 소액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려 온갖 호재 뉴스를 쏟아내는 지금, 전문가들은 그런 설계도가 그려지는 것을 알면서도 마케팅과 관심 끌기를 위해 계속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자본이 집중되어야 발전할 수 있는 분야인 것도 알고, 또 한편으로는 발전이 더디더라도 은닉층 외의 다른 부분은 제어 가능하니 이론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내 역량을 고려해 대중의 시각에서 쉽게 접근하고, FOMO가 생기지 않도록 쉽게 설명하여 폭주하는 열차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자 이 매거진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많은 사기꾼들이 부자가 되고,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마저 나서서 암호화폐를 만들고 자국의 통화 정책을 약화시키는 것을 보며 “이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모른다면, 계몽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명감으로 마케팅과 홍보, 파급력에 중점을 둔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 이상한 글들을 많이 보았다. 구글이 AI가 작성한 글은 검색에서 제외한다는 주장이나, AI로 한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식의 글들을 보고, 이세돌 님의 행보를 지켜보며 “역시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궁극의 영역은 예술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가설도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남의 인생을 재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킹과 상황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느라 솔직히 좀 피곤하다.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선택적 정의에 기인한다. 국산이 아닌 해외 AI 도구를 돈도 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홍보하고, 일론 머스크의 성추행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고 금전적 합의가 있었던 사실은 차치하고 자신들의 포지셔닝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 인용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다. 따지고 보면 힘없는 자만 비난하고 힐난하는 행태가 선택적 정의와 너무 닮아있다. 사실 이런 부류가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든 성공하면 또 성공한 자의 전력이 된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스스로 돈을 들여 달라붙기 때문에 딱히 보상을 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비판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어간다. 꼭 필요한 부분은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시간이 아깝다.
아마 브런치 작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글을 쓰는 사람은 시집 하나면 하루가 행복하고, 철학책 하나면 일주일이 행복하다. 소설 시리즈면 몇 달을 보낼 수도 있다. 본업을 하며 자투리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것과 사기꾼들의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지하철 대신 길을 걸어보는 시간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똑똑하고 해외에서 공부한 독립투사들도 모두 그랬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하층민이 봉기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가장 혹독한 벌은 기득권 세력에 대항한 자들이 받았으니, 사실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면서도 인류애까지 가진 완전한 인간만이 세상을 바꿔왔다. 뛰어나지만 섬세하고,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지만 여린 자들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왔다. 이런 위인들이 행했던 진정한 정의를 나는 행할 자신이 없다. 돈이 목표가 된 지금 이미 길을 잘못 들었다. 그 길은 이런 분만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선택적 정의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것을 인식할 수는 있어서 이 분야에 그런 인물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내가 파악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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