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AI 전략은 현재 중요한 전환점에 있습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동시에 AI 분야에 수여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과학 기반 AI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AI 산업 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은 범용 AI와 과학 AI의 구조적 차이를 중심으로, 국가 AI 산업 발전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범용 AI와 과학 AI: 두 얼굴의 AI 기술
현재 대부분의 AI 논의는 ChatGPT나 Claude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AI 기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범용 AI와 과학 AI입니다.
범용 AI는 언어, 이미지, 음성 등 인간의 일상 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챗봇, 콘텐츠 생성, 서비스 자동화 등의 형태로 우리 생활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특히 멀티모달 모델로 확장되면서 그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과학 AI는 분자 구조, 생리활성, 재료 특성 등 정제된 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신약개발, 소재 설계, 정밀의료 등 높은 정밀도와 검증 가능성이 요구되는 첨단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두 유형의 AI는 데이터의 특성, 개발 방법, 필요한 인프라, 응용 분야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AI 전략 역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여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론과 학습: AI 기술의 두 축
AI 기술의 발전을 논할 때 종종 간과되는 부분이 바로 추론(inference)과 학습(training)의 균형입니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250TB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을 진행하더라도, 최종 추론 모델은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몇 GB 수준)일 수 있습니다.
이는 퓨리오사와 같은 기업들이 보여주는 추론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학습 시장은 막대한 하드웨어 비용이 소요되지만, 효율적인 추론 기술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AI 전략은 이러한 추론과 학습의 균형적 접근을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합니다.
과학 AI: 딥테크 산업의 핵심 동력
과학 AI는 단순한 기술 도구가 아닌, 산업의 본질적인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재정의하는 기반 기술로 작용합니다. 제약 산업에서는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 탐색 과정을 수천 배 빠르게 수행할 수 있으며, 소재 산업에서는 새로운 물성을 가진 물질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이 제한된 데이터 환경에서도 과학기술 지식과 AI를 결합해 혁신을 이루어낸 사례입니다. 이는 데이터 생산 비용이 높고 복잡한 문제에 비해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과학 분야에서도 AI의 혁신적 활용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파운데이션 모델: AI 생태계의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은 다양한 다운스트림 작업에 범용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식의 축적체로, AI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와 같은 단백질 구조 파운데이션 모델은 신약 설계, 질병 메커니즘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은 데이터 정제 비용이 높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으며, 투자 회수 기간이 길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중장기 R&D 투자가 필수적이며, 이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체계적인 지원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역별 특화 전략: 네트워크형 AI 생태계 구축
현 단계의 AI 발전 수준을 고려할 때, 국가 차원의 AI 전략은 지역별 특화 접근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수도권은 문화AI, 대전은 과학AI, 전남은 에너지AI, 경남은 제조AI와 같이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살린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각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연구 역량을 AI 기술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과 AI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습니다.
AGI로의 여정: 융합적 접근의 중요성
인공일반지능(AGI)에 대한 논의는 종종 언어모델의 확장만으로 도달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진정한 AGI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실질적 창조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범용 AI의 학습 능력과 과학 AI의 원리 기반 사고 능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즉, AGI는 단일 기술의 발전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파운데이션 모델이 축적되고 상호작용하는 생태계 속에서 진화하는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AGI를 국가 전략 목표로 설정한다면, 범용 AI와 과학 AI를 포괄하는 장기적이고 균형 잡힌 R&D 전략이 필요합니다. 국가 차원의 AI 센터를 중심으로 분야별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산업 적용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중요합니다.
산학연 협력: 각자의 역할과 시너지
AI 기술은 산업계와 학계에서 서로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개발됩니다. 학계에서는 개별 연구자 중심의 분절된 연구가 진행되는 반면, 산업계에서는 대규모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 복잡하고 전략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AI 정책이 여전히 학술 논문이나 특허 출원 등의 정량적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산업 현장의 요구와 괴리가 존재합니다. 산업 지원과 학문·교육 지원은 각각의 목적과 특성에 따라 분리된 전략 체계로 설계되어야 하며, 두 영역이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됩니다.
결론: 균형과 융합의 AI 국가 전략
대한민국의 AI 전략은 범용 AI와 과학 AI의 균형적 발전, 추론과 학습의 조화, 지역별 특화 전략을 통한 네트워크형 생태계 구축, 그리고 산학연의 유기적 협력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국가 산업 전반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특히 AGI로의 여정에서 범용 AI와 과학 AI의 융합적 접근은 필수적입니다. 언어모델의 확장만으로는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진정한 AGI를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 사고 능력과 범용 학습 능력이 결합될 때, 우리는 보다 지능적이고 창의적인 A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AI 전략은 단순한 기술 개발 로드맵이 아닌,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이끄는 포괄적인 청사진이어야 합니다. 범용 AI와 과학 AI의 균형적 발전, 지역별 특화 전략, 산학연 협력의 최적화를 통해 대한민국은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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