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분산화의 아이러니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큰 혁신적 가치는 중앙화된 권위 없이 분산된 참여자들이 합의를 통해 공통의 원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비트코인SV(BSV)와 같은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무제한 확장은 분산화라는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BSV의 확장성 전략과 모순
Bitcoin SV는 “무제한 확장성”과 “대규모 온체인 처리”를 목표로 하며, 테라바이트 크기의 블록을 통해 초당 수백만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접근법에는 심각한 모순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 분산 원장의 중앙화: 테라바이트 규모의 블록체인이 되면 연간 수백~수천 테라바이트의 스토리지가 필요합니다. 이는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이 전체 노드를 운영하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결국 소수의 대형 기관만이 완전한 노드를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 검증의 불가능성: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는 누구나 트랜잭션을 직접 검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데이터는 다수가 직접 검증할 수 없으므로, 결국 소수의 대형 노드를 신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 진입 장벽 상승: 초대형 블록은 노드 운영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 대역폭, 스토리지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킵니다. 이는 새로운 참여자의 진입을 어렵게 하고, 기존 대형 플레이어의 영향력을 강화합니다.
- 신뢰의 역설: “trust-minimized” 시스템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대형 노드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더 많은 신뢰가 요구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합니다.
실제 사례로 본 문제점
BSV는 이미 테스트 네트워크에서 1,640만 트랜잭션이 포함된 블록을 생성했지만, 이런 규모의 블록이 실제 네트워크에서 원활하게 작동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Money Button CEO인 Ryan X. Charles는 BSV 노드 실행 과정에서 “스트레스 테스트 중 BSV 노드가 메모리 부족으로 충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는 “노드 운영 비용이 월 수천 달러에 달하고, 블록 크기가 계속 커지면 이 비용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확장성 vs 분산화” 트릴레마
블록체인은 보안, 분산화, 확장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BSV는 극단적으로 확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분산화의 약화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원래 해결하고자 했던 중앙화 문제로 다시 회귀하는 것입니다.
대안적 접근: 월별 해시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역할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흥미로운 접근법으로, “월별 해시 발행과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원장 보관”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 월별 원장 해시: 전체 트랜잭션 히스토리는 한 달에 한 번 해시로 압축되어 블록체인에 기록됩니다. 이 해시는 작고 효율적이므로 모든 참여자가 쉽게 저장하고 검증할 수 있습니다.
-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원장 보관: 완전한 트랜잭션 기록은 국가나 공인된 기관이 보관합니다. 이 기관들은 규제와 감독을 받으므로, 데이터의 무결성을 보장하는 법적 책임을 집니다.
- 선택적 검증 가능성: 누구든지 특정 트랜잭션이나 기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경우, 관련 데이터만 요청하여 월별 해시와 비교해 무결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하이브리드 신뢰 모델: 이 접근법은 완전한 탈중앙화와 완전한 중앙화 사이의 중간 지점을 제시합니다. 기본적인 신뢰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확보하면서, 월별 해시를 통한 검증 메커니즘으로 이중 안전장치를 제공합니다.
결론: 현실적 균형점 찾기
블록체인 기술의 초기 이상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검증할 수 있는” 완전한 탈중앙화였습니다. 그러나 BSV 사례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확장성 추구는 오히려 중앙화를 촉진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에 있습니다. 월별 해시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조합과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은, 기술적 한계와 현실적 필요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분산화의 정신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확장성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일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기술적 가능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맥락 속에서 그 역할을 재정의하는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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