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 환경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불편 중 하나는 출금 제한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자산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사업자와 감독기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그 배경에는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과 국제 자금세탁방지 규제, 그리고 거래소의 내부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거래소가 정기적으로 고객 위험도를 평가하고 고위험으로 분류된 고객에 대해 추가 확인 절차를 부과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특금법과 그 하위 규정은 모든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지속적인 고객확인(Customer Due Diligence, CDD)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고객에 대해서는 강화된 고객확인(EDD, Enhanced Due Diligence)을 실시해야 한다. 이는 국제기구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권고사항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거래소는 매월 1일 고객의 거래 패턴, 입출금 내역, 이상거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고객 위험도를 재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고위험으로 판정된 경우, 매매 및 입출금 제한이 자동적으로 적용된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차단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의무 조치다. 다시 말해, 고객이 신분 확인이나 추가 정보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래를 재개할 수 없으며, 이는 감독기관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다.
문제는 이러한 절차가 이용자에게는 불투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왜 갑자기 거래가 막혔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사전 안내나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면, 이는 곧 민원으로 이어진다. 실제 회신 문서에서도 확인되듯, 기관은 거래소의 절차가 특금법에 부합한다는 사실만을 전달하고, 민원은 감독·검사 업무에 참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으로 마무리된다. 즉, 법적·제도적 구조는 정합적이지만, 사용자가 체감하는 서비스 경험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상황을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 금융 규제의 본질은 단순히 불편을 야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법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자금세탁방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가 차원에서 금융 제재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금융산업 전체의 신뢰를 훼손한다. 따라서 거래소와 감독기관은 이용자의 불만을 감수하면서도 법적 요구사항을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다.
다만, 제도와 서비스의 간극을 줄이는 것은 여전히 과제다. 해외 주요 거래소들은 이미 보다 정교한 리스크 평가 체계와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고객이 고위험 평가를 받는 조건을 사전에 공지하거나, 확인 절차를 디지털화하여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개선은 단순히 민원 건수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거래소의 신뢰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가상자산 거래의 자유로움은 규제와 통제 속에서만 보장된다. 고객확인 절차는 개인의 편의를 제한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금융시스템의 건전성과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남은 과제는 이를 어떻게 이용자 친화적으로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상자산 산업이 성숙해질수록, 단순히 법적 준수에 머무르지 않고 이용자 경험까지 고려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