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신뢰에 기반한 구조다. 우리는 매일같이 웹사이트에 로그인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API와 상호작용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간의 암묵적 신뢰가 필요하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Web3가 지향하는 방향은 그와 정반대다. 신뢰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제외”한 채로도 안전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등장한 기술이 바로 zkTLS(Zero-Knowledge Transport Layer Security)다.
zkTLS는 기존의 TLS 프로토콜에 제로 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ZKP)을 결합한 구조다. TLS는 인터넷 전반에 걸쳐 보안을 제공하는 암호화 프로토콜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제3자가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zkTLS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데이터를 받아오는 과정을 ZK 회로 내에서 재현하고, 해당 응답이 진짜라는 것을 외부에 증명한다. 이때 실제 데이터 내용은 숨기고, 그 데이터가 유효하다는 사실만을 증명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Web2와 Web3를 연결하고자 할 때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Spotify에서 좋아하는 곡 목록을 받아와 Web3 소셜 그래프에 반영하고자 할 때, 기존에는 중앙 서버나 오라클이 그 정보를 중개해야 했다. 그러나 zkTLS를 이용하면 사용자가 로컬 환경에서 Spotify에 접속하고, 그 응답을 기반으로 ZK 증명을 생성하여, 이 증명만을 온체인에 제출함으로써, 데이터 위조 없이 신뢰할 수 있는 브리지를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Spotify 계정 정보나 로그인 토큰은 단 한 번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zkTLS의 진정한 강점은 “사용자 로컬 환경에서만 동작하는 오픈소스 증명기(prover)”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만약 증명 생성 코드 자체가 오픈되어 있고, 실행은 오직 사용자의 브라우저 또는 CLI에서 이뤄지며, 생성된 증명 외에는 어떤 정보도 외부로 전송되지 않는 구조라면, 이는 신뢰 없는 환경에서도 완벽한 보안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러한 아키텍처는 Zero Trust 원칙에 부합하며, 사용자가 어떤 중앙 주체도 신뢰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데이터를 증명할 수 있도록 만든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모델이며, 현재 많은 zkTLS 관련 프로젝트들은 성능, 회로 복잡성, TLS 구현체의 다양성 등 여러 한계에 직면해 있다. 특히 TLS 1.3의 암호화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 ZK 회로를 구성하는 것은 연산량 측면에서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하지만 WASM 기반의 로컬 prover나, 회로 최적화를 위한 특수 도메인 프로버 엔진의 발전이 이 벽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Web2와 Web3를 연결하기 위해 API 브리지나 오라클을 사용하는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할 기술 중 하나로 zkTLS는 매우 강력한 후보이며, 향후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자격 검증, 게임, DePIN, 소셜그래프, 온체인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그 유효성과 출처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zkTLS의 본질이며, 신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열쇠다.